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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기테 몬하우프트
브리기테 몬하우프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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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9년 6월 24일(1949-06-24)(73세) 서독 라인베르크 |
성별 | 여성 |
소속 | 독일 적군파 |
브리기테 몬하우프트(독일어: Brigitte Mohnhaupt, 1949년 6월 24일 ~ )은 1971년부터 적군파(RAF)의 멤버였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2세대 적군파’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일의 가을'로 알려진 1977년의 연속된 요인납치, 암살, 여객기 납치사건들의 계획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체포되어 9건의 살인과 다수의 살인미수 혐의로 5번의 종신형과 15년의 형이 선고받았으며, 법정 최소 구금 기간인 24년을 채우고 2007년 3월 25일 보호감찰로 석방되었다.
생애
몬하우프트는 라인베르크(독일어: Rheinberg)에서 출판사 직원의 딸로 태어났으며, 1960년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는 1967년 브루흐잘(Bruchsal) 소재 쇤본 고등학교(Schönborn-Gymnasium)를 졸업하였다. 당시 그녀를 가르친 교사는 “그녀는 재능 있고,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다. 어떻든 그녀는 아주 성실하거나, 흥미를 가지는 편은 아니었다.”고 회상하는 것으로 봐서 당시까지 그녀의 급진적인 면이 들어나지는 않았다. 대학 입학자격 시험통과 후 언론인이 될 생각으로 뮌헨 대학교 철학부의 신문학과 역사학과에 등록을 했다. 거기서 좌파적 환경을 접했으며 남자친구인 로프 하이슬러(Rolf Heißler, 후에 적군파 조직원이 됨)와 메츠가 15번지로 이사를 한다. 거기에 좌파의 주요인물들을 알게 되고 그녀 자신도 유명인사가 된다. 1968년 로프 하이슬러와 결혼했다가 2년 후 이혼한다.
적군파 참여
1971년 그녀는 적군파를 결성하고 조직, 운송, 무기조달에 참여한다. 1972년 6월 9일 범죄단체가입, 상해 및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체포되어 4년 8개월형을 선고 받는다. 형기의 마지막 달을 적군파 1세대들과 슈투트가르트 형무소에서 보내면서 출소 후 적군파 재조직 지령을 받는다.
2세대에서의 역할
1977년 2월 8일 출소 후 그녀는 크리스티안 클라(Christian Klar) 지도하의 다른 적군파 조직원과 접촉을 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도적 위치를 자임하였으며 아드래아 바아더(Andreas Baader)는 감옥으로부터 밀반출한 “몬하우프트가 지금부터 지도권을 갖는다”는 내용의 문건을 통해 이를 확인한다. 적군파 1세대의 지지와 그녀의 활동으로 2세대의 지도자가 되면서 그 해 내내 아직 구금되어 있는 적군파 석방을 위해 소위 ‘공습77’을 계획한다.
1977년 4월 7일 몬하우프트는 동료 2명과 연방검사 지그프리드 부박(Siegfried Buback)암살에 참여한다. 1977년 7월 30일에는 크리스티안 클라와 은행가인 위르겐 폰토(Jürgen Ponto)를 저격한다. 이 두건의 사건에서 누가 살해를 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사건들은 소위 ‘독일의 가을’의 서막이었다. 실패한 칼스루에(Karlsruhe) 연방검찰청 공격에도 그녀는 가담했고 경총의장인 한스마틴 쉴라이어(Hanns-Martin Schleyer)의 납치 살해에도 가담한다. 쉴라이어 납치후 적군파에 대한 역풍이 거세지면서 몬하우프트와 적군파 조직원들은 파리와 바그다드로 도피한다. 1978년 5월 11일 몬하우프트는 지그린데 호프만(Sieglinde Hofmann), 롤프 클레멘스 바그너(Rolf Clemens Wagner), 페터위그겐 보오크(Peter-Jürgen Boock)와 함께 유고슬라비아에서 체포된다. 이들을 독일로 보내는 조건으로 유고슬라비아는 8명의 망명 크로아티아인과의 교환을 요구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1978년 11월 17일 벨그라드 지방법원의 결정에 따라 적군파 조직원들은 본인들이 선택하는 나라로 출국이 허가된다. 이에 따라 당시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으로 가게 된다. 후에 몬하우프트는 몰래 독일로 돌아와 1981년 9월 15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미군 장군 프레더릭 크로센(Frederick Kroesen)을 부상 입힌 테러에 가담한다.
체포와 2차 수감
1982년 11월 11일 브리기테 몬하우프트는 경찰이 이미 감시하고 있던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근처 숲 속의 적군파 아지트로 들어가다가 체포되었다. 슈투트가르트 고등법원은 1985년 4월 2일 1977년의 9건의 살인과 프레드릭 크로센의 살인미수 그리고 5명의 연방검사 살인미수가담등의 혐의로 5회 종신형과 15년 형을 선고 했다. 변경된 법에 따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86년 7월 16일 기존의 형을 모두 합하여 하나의 종신형의 변경하도록 판결하였다. 슈트트가르트 고등법원은 2006년 3월 15일 특별히 중죄이기 때문에 그녀의 최소 구금기간이 24년이어야 한다고 확정하였다. 그녀가 석방되기까지 아이카흐(Aichach) 형무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보호감찰하의 석방
2006년 2월 21일 보호감찰하의 석방이 신청 되었지만 “특별히 중죄”라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24년의 최소 구금기간을 채운 후 새로운 보호감찰하의 석방 신청이 받아 들여져 2007년 3월 25일 새벽 2~3시경에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