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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전역
갈리폴리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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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갈리폴리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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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러시아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
지휘관 | |||||||
이언 해밀턴 |
오토 리만 폰 산더스 | ||||||
병력 | |||||||
5개 사단 (초기) 16개 사단, 568,000여 명(영국군 489,000여 명, 프랑스군 79,000여 명 (최종) |
6개 사단 (초기) 15개 사단, 315,000여 명 (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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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252,000여 명 사상 | 210,000여 명 사상 |
갈리폴리 전투 또는 다르다넬스 전투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 다르다넬스 해협의 겔리볼루반도(갈리폴리반도)에서 벌인 일련의 상륙 전투이다.
연합군은 1915년 2월 19일과 2월 25일, 3월 25일에 각각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으나 터키군의 반격과 기뢰 등으로 인해 3척의 함대가 격침되고, 3척이 대파되었다.
이로 인해 총책임자 윈스턴 처칠이 총관직에서 물러나고 영국 해군의 피셔 제독도 사임했다. 이에 연합군은 새로 임명된 영국의 I. 해밀턴 장군의 지휘 아래에 4월 25일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주축으로 한 영연방 및 프랑스군 7만 명을 갈리폴리에 상륙시켰다.
하지만 독일 제국의 오토 리만 폰 산더스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휘하 터키군의 공격으로 실패했다. 또 터키군의 병력을 잘못 파악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병사가 8,587명이나 전사하고 1만 9367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연합군 총사상자는 25만 명에 달했으며 터키군도 21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과정에서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했던 물리학자 헨리 모즐리도 전사했다. 결국 상륙 작전의 실패로 연합군은 6개월 뒤에 갈리폴리에서 철수했다.
이 전쟁에 참여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군단을 앤잭 군단(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ANZAC)이라고 부르는데, 1915년 4월 25일 반도에 상륙했지만 작전을 지휘하던 영국 장군의 무능한 리더십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고, 영국이 결국 그 작전을 실패로 결론지은 1916년에 철수했다. 이후 갈리폴리반도에 상륙한 날을 기념하는 앤잭 데이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되었다.
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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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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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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